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 게릭 (문단 편집) === 연속 경기 출장 기록: 시작과 끝 === 1925년 6월 1일 대타 출장부터 이어진 루 게릭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은 어느 순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렇게 14년을 거쳐 게릭은 '''2,130경기 연속 출장'''이란 위업을 달성했다. 게릭의 이 기록은 1987년 6월 13일까지 유지되었지만, [[NPB]]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내야수 [[기누가사 사치오]]가 그날 2,131번째 경기 출장으로 게릭의 기록을 경신하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기누가사의 최종 기록은 '''2,215경기''').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가 1995년 9월 6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와의 경기에서 게릭의 기록을 경신하며 메이저리그 기록에서도 2위로 내려앉았다.[* 립켄 주니어는 이듬해인 1996년 6월 14일 기누가사의 2,215경기도 뛰어넘었고, 최종 기록 '''2,632경기 연속 출장'''을 끝으로 2001년 시즌 후 은퇴했다.] 그러나 여전히 좌타자로는 세계 1위로 남아 있다. 물론 기록 달성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행운과 주변의 도움도 컸다. 몇몇 위기들의 사례들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1933년 4월 23일, 워싱턴 세너터스의 얼 화이트힐(Earl Whitehill)의 투구에 머리를 맞아 거의 혼절했던 적이 있었다. 또 1934년 6월에도 공에 맞아 의식을 잃는 일이 있었다. 당시엔 헬멧 도입 이전인지라 특히 위험했다. 같은 해 7월 13일엔 등허리 통증이 심해 다음날 원정 경기에서 리드오프로 나서 안타를 친 다음 대주자로 교체됐다. 참고로 이 당시의 통증이 훗날 그가 겪게 될 병의 초기 증상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많다. 또한 양키스의 단장 에드 바로우(Ed Barrow)가 [[독감]]으로 힘겨워하던 게릭을 보고 독단적으로 우천 연기를 시킨 일화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부상이 있더라도 꾹 참고 출장하느라 당연히 이곳저곳이 다치고 깨졌는데, 나중에 찍은 그의 [[엑스레이]] 사진에선 수많은 골절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가 활약하던 시대는 선수들의 몸 상태에 전혀 관심이 없던 시기이도 했는데, 루 게릭의 열 손가락이 모두 골절되었다가 저절로 아문 흔적이 있었다고(...)] 그런 게릭의 몸에 본격적으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던 것은 1938년으로 여겨진다. 그 해 게릭은 원인 모를 피로함을 호소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기운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말을 했었다. 그 해에도 역시 훌륭한 활약을 해내긴 했으나 확실히 이전의 화려한 기록엔 미치지 못했다.[* 전반기 성적만 보면 루 게릭의 명성에 걸맞는 성적이었지만 후반기 시즌때 기록이 말도 안되게 저하되고 홈런수는 급감하게 된다. 병세가 시즌 중반 이후부터 심해진듯] 이때까지만 해도 게릭은 슬럼프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거라 여겼고 1939년에는 다시 부활하겠다 약속하며 비시즌기간에 이전보다 더 땀을 흘리고 몸관리에 신경썼다. 1939 스프링 트레이닝 시기쯤 되자 게릭의 몸상태는 명백히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게릭은 그 해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했고, 당연히 주루에도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경기장에서 주루 중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정규 시즌에 돌입해 4월의 끝자락이 될 무렵이었다. 게릭은 이전에 보여줬던 힘차고 근성넘치던 모습들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제임스 칸(James Kahn)이란 기자가 쓴 글에 따르면, 유명한 선수들이 갑작스레 노쇠화를 겪는 일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당시 게릭의 모습은 너무나도 괴리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분명 공은 제대로 맞추는 것 같지만 타구가 뻗질 않고 있었다. 심지어 어느 순간 게릭은 1루 수비조차 힘겨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던 4월 30일, 루 게릭은 워싱턴 세너터스를 상대로 무안타를 기록했다. 그것이 기록의 마지막인 2,130번째 경기였다. 이 경기서 게릭은 수비에서 자기 쪽으로 오는 땅볼을 힘겹게 잡고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최대한 힘써가며 움직여서 간발의 차이로 베이스 커버에 성공해 아웃을 만들었다. 그걸로 공수교대에 들어갔고 옆의 팀 동료가 '''"나이스 커버"'''라고 격려해 줬을 때 그제서야 더 이상 뛰면 안된다는 걸 깨닫고 은퇴를 결심한다.[* 그 팀 동료는 별 생각없이 수비를 잘끝냈으니 가볍게 격려한 거였지만 게릭에게는 '''"누구나 하는 기본적인 땅볼 수비도 간신히 하고 나이스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난 이제 끝났구나."'''란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5월 2일, 양키스는 디트로이트에서 타이거즈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게릭은 감독 조 맥카시를 찾아가 말했다. "조, 벤치에서 쉬겠습니다." 자신이 팀에 '''방해'''가 되는 걸 원치않는다고 말하는 게릭을 두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맥카시였지만 그것을 억누르며 조용히 동의했다. 그리고 맥카시는 "1루는 너의 것이니 다시 뛰고 싶을 때 언제든 말하라"며 게릭을 격려했다. 그날 장내 아나운서는 게릭의 기록이 2,130경기에서 끝났음을 관객들에게 알렸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홈팬들은 눈물 고인 눈으로 앉아있는 게릭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1루수 자리는 베이브 달그렌이 들어갔고 이후 게릭은 벤치에 앉아 팀의 주장으로서 남은 시즌을 함께 했지만, 그가 다시 메이저 리그 경기에 출장하는 일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